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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2013~19)/경험

공부했던 국사가, 역사 유적지 앞에서 생각났을 때!!-함양 상림에서~

by 허재희 201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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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블로거 팸투어를 다녀왔습니다. 따끈 따끈한 이야기를 안고서, 빨리 글을 쓰고 싶어 간질거리는 손을 자제시키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부터 시작해서 1박 2일간 진행한 팸투어의 거의 말미에 함양 상림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함양 상림은 최치원이 함양 태수(군수)로 있을 때 만든 최초의 인공림입니다. 항상 인공림을 보아왔었는데, 이것이 최치원이 만든 최초의 인공림이라고 하니, 의미깊게 느껴졌습니다.

 

상림 이 곳에는 볼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많아서 공기가 좋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유물과 함양의 역사 또한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최치원 산책로를 따라, 블로거 님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산책로의 처음에는 그네가 있었습니다. 앞에 함양의 함화루 누각도 있는 것이, 꼭 이동령이 누각에서 서서 그네타는 춘향이와 향단이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할극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향단아~ 그네를 밀어라~" 하며 그네도 타고, 누각은 유물 보호 차원인지,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이 누각 함양 함화루는 조선시대 함양 읍성의 남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시기에 이 누각을 철거하려고 하자, 노덕영 선생님께서 사비를 털어 옮겨 놓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사비! 라는 말에, 마음 속에서 나도, 이런 분처럼, 나라를 위해 한 몫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나왔습니다.

 

함양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다보니, 손목아래가 떨어지고, 허리가 부러진 고려시대의 돌부처도 있었습니다. 시대별 돌부처 구분법을 알게되었는데, 얼굴이 정교하면 신라시대의 부처이고, 조금 둔탁하면, 고려시대의 부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돌부처를 보니, 얼굴이 둔탁한 것이.. 딱! 봐도 고려시대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상림에서 신기한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나무 연리목이라는데,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간의 애정이 깊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무의 몸 통 두개가 붙은 것은 연리목, 나무 가지가 붙은 것은 연리지라고 합니다.^^

 

최치원이 태수로 있을 때 지은 것이기 때문인지, 최치원 신도비도 있었습니다. 이 비는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만든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라고 합니다. 비석을 보면서, 이 상림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도 알 수 있었습니다.

 

울타리 끝에, 호미로 보이는 것이 조각되어 있는 모습이 최치원 선생님께서 직접 실천하시는 분이셨다는 생각도 하게 했습니다.(사진으로 남기진 못했네요..에구..)

 

저는 가다가 신기한 것도 발견을 했습니다. 한 분께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시길레, 조용히하고 나무를 쳐다보니, 제법 가까운 근처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처음 당장,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습니다.

 

딱따구리는 죽은 나무만 쫀다는데, 이 나무는 죽었네.. 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 있는데, "딱따구리는 저렇게 작은 부리가 엄청 강하구나.. 저 나무를 쫄 만큼 단단하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만물박사 선생님께서 "딱따구리는 부리를 쪼고나서, 저 충격을 흡수 할 만큼 머리가 단단하다고 하다고 해~" 그러다가, 웃는다고 하는 말이 "새대X리 라는 말도 있잖아."라고 하셨습니다.

 

충격을 흡수하는 딱따구리의 머리가 단단하긴 단단한 가 봅니다. 딱따구리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우리가 와서 말을 하고 있어도, 달아나지 않고, 계속~ 먹고 있었습니다. 딱따구리의 특성답게 동그랗게 돌려가면서, 나무를 쪼는 모습을 볼 수 도 있었습니다.

블팸-딱다구리가 나무 파는것.MTS

 

그 아래로는 새를 본다고 잊어버린 함양상림의 명소인 마당바위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당처럼, 넓게 펼쳐진 마당바위!!

 

다음으로 도착 한 곳은 "역사인물 공원' 라고 해서, 영남의 대표적 선비고장이라고 불리는 함양의 여러 인물들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가운데, 최치원 선생님을 기준으로 조승숙, 김종직, 정여창 등의 인물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그 분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동숙이라는 조각가가 우리나라에서 인물조각상으로 제일 유명하다는데, 진해출신으로 만물박사 선생님의 아시는 분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물을 조각하기기가 조각 중에서는 가장 힘들다고 하시는데, 주름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묘사가 되어있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비석을 둘러보면서 읽어보다가 저는 어! 라고 생각이 번뜩! 떠 올랐습니다. 함양에 오신 군수들의 선정비를 세운 것인데, 저는 거기서 낯이 익은 이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조병갑!!" 국사 시간에 배운 것이 뇌리에 스치면서, 저는 "고부 군수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게 한 사람!!"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항상 이야기 하는 '주입식 교육'이 여기서 발휘하는 구나.. 라는 생각 속에서도 이렇게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공부했던 조병갑의 이야기 머리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것이, 제 앞에 보이는 선정?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함양에 있다가 고부군수로 가서는 나쁜 일을 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물박사 선생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조병갑! 아시죠?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게 한 사람~ 이 분이 함양군수로 계시다가 고부로 가셨는데, 역사는 집권세력에 의해서 쓰이는 것이니까, 백성들을 못 살게 굴면서, 뜯어낸 세금으로 역사에는 좋은 인물로 남고 싶어서 이렇게 선정비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라는 상상을 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매치시켜보았습니다.

 

그 옆에서 저는 또한!! 희한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물박사 선생님에 의하면, 조병갑의 아버지라고 하시는 분의 선정비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이렇게 부자가 나란히 선정비가 있는 경우는 이 경우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공부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매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래서, 공부를 해야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조병갑의 동학농민이야기를 몰랐다면, 순수하게 선정을 했던 사람이다. 라고 느꼈을 텐데, 어긋나는 부분까지 매치시켜 상상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공원의 시작부분에 잊어서 놓쳤던 열녀비도 보았습니다. 이 열녀비는 "열녀학생임술증처유인밀양박씨지려"라고 해서 밀양 박씨의 열을 기려 세운 정려비라고 되어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것을 아쉬워하여 3년장례를 치른 후에 따라 죽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열녀비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들~ 그 것을 읽으면서 "왜??"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남편이 죽어서 따라 죽을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 열녀는 박지원 선생님의 "열녀함양박씨전'의 실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것을 보고 최치원 산책로를 따라, 걸어나왔습니다. 여름에는 연꽃이 있는 장소에 연근을 캐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근을 보면서, "우리가 먹는다고 먹는 반찬의 연근이 연꽃의 뿌리인 연근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족들이나, 그냥, 내 또래 친구들과 그냥, 공원으로 갔었더면, 몰랐을 뻔했던 이야기들을 박학다식한 블로거분들과 만물박사 선생님과 함께 가서 많은 것들을 알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즐거웠던 블로거 팸투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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