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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흥분

by 허재희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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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흥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유지혜 작가가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리듯이 사진 한 장 글자 조금을 엮어 놓은 여행기를 읽었다. 왼쪽으로 가다가 오른쪽 길의 음식 냄새를 맡고 무작정 들어간 작가.

 

다 문득 내 유럽 여행이 궁금해졌다. 읽고 있던 책을 뒤로 밀어버리고 서랍에 있던 아이폰을 꺼냈다.

 

사진을 옮기는 것 대신에 아이폰을 외장하드처럼 꺼내어 보고 싶어서 팔지 않은 내 아이폰 7.

 

오늘이 그 날 이다.

 

사진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낸다. 아이폰 감성도 느낄 수 있어 나름 감성도 생겼다.

 

곤히 잠들고 있던 아이폰에 밥을 주고 조심스레 깨웠다.

 

 

"준비 완료!"

 

유럽 여행을 보려면 한 참을 올라가야한다. 시기별로 춘천, 화천, 장성, 마산을 거슬러 올라가니 유럽 여행 마지막 장소인 로마의 콜로세움이 나를 반겼다. 베레모를 꼬까로 쓰고 추운 날 코트에 구두까지 신고 돌아다녔던 즐거운 허재희의 모습이 보였다.

 

뭘 해도 즐거워 보였다. 개구쟁이처럼 폴짝 폴짝 뛰는 모습도 행복해보이고, 뒤에서 찍으면 무조건 예뻐보인다고 어? 왜?샷* 에서도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내 여행에 대한 정의는 "즐겁고 행복하려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 단 한 순간도 슬프고 속상해서는 안되며 이 때 나의 임무는 "무조건! 행복하고 무조건 즐겁기!" 이다. 이런 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사진 속 재희가 보였다.

 

유럽 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른 도시에서의 재희도 보였다.

 

지휘관이라는 자리에서 느끼는 걱정과 고민을 조금.. 맛보고 있는 춘천에서의 나.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내가 처음 화천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던 화천에서의 나.

 

이 순간이 군생활 전역까지 마지막 자유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동기들과 미친듯이 놀아대던 장성에서의 나.

 

24년동안 한 번도 떠나지 않아서 평생 안떠날 줄 알았던 마산에서의 나.

 

그런데.. 지금은 이사라는 것을 위해서 미니멀라이프를 살아야 하는.. 이 곳 저 곳 지역을 자주 옮겨 다니는 장교 라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옮겨 다니면서 살아야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처음 부대가 너무 좋았고, 화천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따뜻했다. 이제 적응할 만 하니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이게 장교의 삶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시작한 내 자신이 너무 속상했다.

 

이 때 였을 거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했던 것이. 나는 화천에서 한 달 살기. 아니 "1년 살기"를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니 그 지역에 대해서 잠깐 스쳐가는 수준이 아니라 친구도 만들고, 단골이 되기도 하고. 팀에 속해서 그 지역을 응원하기도 하면서 1년 살기!! 를 하는 거야.

 

왼쪽으로 가려고 했던 날. 오른쪽으로 가고 싶어서 우회전을 했다면 내일은 다시 좌회전을 해도 되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이 곳을 떠나는 거지!

 

 

??

 

그 곳에서의 순간을 여행하듯이, 웃고 행복해야하는 것이 임무인 내 유럽여행처럼. 일상을 여행하다. 여행하자.

 

그렇게 친해진 화천.

 

친해져버려서 이제는 떠난다는 것이 믿지 않는 춘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몇 번이고 다시 올거라고. 소중한 사람들이 여기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버린 이 곳을.

 

 

그렇게 지역의 색에 동화하면서 나는 오늘도 여행하며 드라이브 하며 출근을 한다. 조용하게 흥분하면서.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힌 이 시국에 매일 여행하고 얼마나 좋아 ;) 이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달랜다.

 

 

하지만 화천에서, 춘천에서 1년 살기를 하고 있으면, 실제로 내 여행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들도 찾아오고, 속상하게 하는 시간들도 나를 인내하게 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좋은 일만 있어서 항상 행복할 순 없는 것처럼 힘든 순간 이후에 찾아오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춘천에서의 허재희도 다음 순간을 잘 기다리고 버텨야겠다.

* 어? 왜? 샷. 걸어가다가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00야~ 부르면 어? 왜? 라고 대답하면서 찍으면 된다. 자연스러움이 생명이고 본인이 잘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뒷 쪽의 카메라를 쳐다보면 되는 사진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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